합의서에 서명한 뒤에도 그날의 사정이 마음에 남을 수 있습니다. 다만 법은 한번 맺은 합의를 쉽게 되돌리지 않고, 다시 보는 자리도 몇 군데로 좁혀 두었습니다. 그러니 합의서를 다시 꺼내 보신다면, 그 자리가 어디인지부터 나누어 보면 됩니다.
핵심 정리
- 민법 제104조는 궁박이나 경솔, 무경험으로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를 무효로 정합니다.
- 대법원은 주고받은 것이 현저하게 어긋났는지와, 그 어긋남이 생긴 사정을 함께 보았습니다.
- 의료사고 합의는 대개 서로 양보해 다툼을 끝내는 화해라서, 다툰 내용을 잘못 알았다는 착오만으로는 취소하지 못합니다.
맺은 합의를 다시 볼 수 있나요?
병원과 직접 맺은 합의도 양쪽이 함께 지키기로 한 계약입니다. 그래서 법이 합의를 다시 보는 자리는 좁고, 민법 제104조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문은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정합니다. 취소가 아니라 무효라고 정한 것이 이 조문의 효과입니다.
대법원은 궁박을 급한 곤궁으로 보았고, 돈 문제뿐 아니라 정신적 · 심리적 사정도 여기에 든다고 했습니다. 무경험은 거래 일반에 대한 경험이 모자란 것이라고 풀었지요.
대법원은 주고받은 것이 현저하게 어긋나고, 그것이 궁박이나 경솔, 무경험에서 비롯되어야 이 조문이 선다고 보았습니다. 셋이 모두 갖춰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다만 상대방에게 그 사정을 알면서 이용하려는 뜻이 없었다면, 이 조문은 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잣대는 의료 쪽 다툼에서도 쓰였습니다. 병원이 청구한 치료비를 두고 다툰 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같은 법리를 들면서도 그 치료비는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 판단은 병원 치료비 판결 해설이 풉니다.
착오로 맺은 합의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착오는 다른 조문이 다룹니다. 민법 제109조는 법률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잘못 알았으면 취소할 수 있게 합니다. 다만 그 잘못에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취소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의료사고 합의는 대개 서로 양보해 다툼을 끝내는 화해계약입니다. 민법 제733조는 화해계약을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지 못한다고 정하지요. 그러면서 당사자의 자격이나, 다툼 밖의 사항을 잘못 안 때는 예외로 둡니다.
그래서 배상액처럼 다투다 양보한 부분을 잘못 알았다는 것만으로는 합의를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어디까지가 다툼이었는지는 의료사고 합의서 글과 착오 취소 판결 해설이 이어서 풉니다.
속이거나 겁을 주어 맺은 합의는 또 다른 길입니다. 민법 제110조는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세 자리가 갈리는 점은 효과입니다. 제104조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무효이고, 착오나 사기 · 강박은 취소해야 효력을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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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뒤 예상 못 한 손해가 드러났다면?
이 물음은 제104조가 아니라, 합의서를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입니다. 일정한 돈을 받고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기로 했다면, 그보다 큰 손해가 생겨도 다시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대법원은 세 사정이 겹치면 그 손해까지 포기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합의 때 손해 범위를 알기 어려웠고, 뒤의 손해를 예상할 수 없었으며, 알았다면 그 금액으로 합의하지 않았을 만큼 중대한 때입니다.
그런데 이 법리를 든 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뒤에 드러난 손해가 합의 전에 이미 생겨 있었다며 합의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 지금 드러난 손해를 합의 때 알 수 있었는지가, 합의서를 다시 볼 때의 첫 물음이 됩니다.
중재원 조정이 성립했거나 법원에서 화해했다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힘이 있어 다시 묻는 길이 다릅니다. 그 길은 기판력 글이 다룹니다.
그때의 사정은 어떻게 보나요?
대법원은 궁박이나 무경험이 있었는지를 한 가지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나이와 직업, 교육, 사회경험, 재산, 그때 사정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함께 놓고 가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리인이 합의했다면, 경솔과 무경험은 대리인을 기준으로 보고 궁박은 본인을 기준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그 사건에서는 대리인이 맺은 합의를 불공정하다고 본 원심을 깨고,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습니다.
참고한 법령 · 지침
- 민법2026. 3. 17. 시행 · 불공정한 법률행위 ·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 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 화해의 효력과 착오
- 대법원 2002. 10. 22. 선고 2002다38927 판결불공정한 법률행위의 요건
- 대법원 1995. 12. 8. 선고 95다3282 판결병원 치료비와 불공정한 법률행위
- 대법원 2000. 3. 23. 선고 99다63176 판결합의 뒤 예상 못 한 손해
이 글은 일반적인 설명이며 개별 사건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