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해설형사

수혈을 거부한 환자의 수술과 의사의 주의의무

김은정 변호사법무법인 CNE 김은정 의료전문변호사작성 검토

종교적 신념으로 다른 사람의 피를 받지 않겠다고 한 환자가, 수혈 없이 받은 인공고관절 수술 중 출혈이 멎지 않아 숨진 사건입니다. 수술한 의사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죄가 물어졌습니다. 대법원은 생명을 보존할 수혈을 고려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면서도, 환자의 생명과 결정을 견주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에서 의사가 직업적 양심에 따라 어느 한쪽을 존중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1심과 원심의 결론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법원
대법원
선고
2014. 6. 26.
사건
2009도14407 · 형사
결론
공소를 제기한 검사의 상고 기각

무엇을 다퉜나

판결이 옮긴 원심의 사실은 이렇습니다.

  • 환자는 당시 62세였습니다. 오래전 결핵성 관절염으로 오른쪽 골반과 넙다리뼈를 붙이는 수술을 받았고, 붙은 자리의 통증 때문에 인공고관절로 바꾸는 수술을 원했습니다.
  • 다른 사람의 피를 받는 수혈(타가수혈) 없이 하는 수술을 받으려고 대학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피고인을 찾았습니다. 피고인은 혈액종양내과의 답까지 확인해 무수혈 방식으로 수술할 수 있다고 보았고, 상황에 따라 수혈하지 않으면 출혈로 숨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환자는 다른 사람의 피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교리를 생명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수혈하지 말라고 요구하며, 의식을 잃어도 이 뜻은 변하지 않는다는 책임면제각서를 병원에 냈습니다.
  •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수술 전날 환자와 딸에게 대량출혈이 생길 수 있고 그때 수혈하지 않으면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술 직전에 다시 물었지만 환자는 수혈을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 수술 중 과다출혈로 범발성 응고장애가 와 지혈이 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은 다른 정형외과 의사를 수술실 밖으로 보내 가족에게 수혈 여부를 묻게 했지만, 남편은 거부하고 자녀들은 강하게 원해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환자가 속한 종교단체의 위원회에 급히 자문을 청했으나 답이 없었습니다.
  • 출혈이 이어져 수술을 멈추고 중환자실로 옮겼습니다. 그 뒤 남편도 동의해 가족 모두가 수혈을 원했지만, 폐울혈과 응고장애가 진행 중이라 수혈이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병원은 수혈하지 않았습니다. 환자는 다량 실혈에 따른 폐부종으로 숨졌습니다.

1심은 범죄의 증명이 없거나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라고 보았고, 원심도 이를 유지했습니다. 원심은 확고한 신념, 수술을 원한 까닭, 앞서 다른 병원 세 곳에서도 위험을 들은 일, 충분히 받은 설명, 딸의 만류에도 스스로 한 결정을 들었습니다. 심한 출혈 말고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없었고, 그 결과까지 감내할 뜻이 있었다고 보아 수혈하지 않은 행위에 위법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공소를 제기한 검사가, 원심이 자기결정권 법리를 오해했다며 상고했습니다.

법원이 본 것

진료계약에서 설명과 동의의 자리 이유 1 가

대법원은 91다23707 · 2005다5867 판결을 들어, 진료방법을 고르는 데 의사의 폭넓은 재량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환자의 건강상태, 그때의 의료수준, 의사가 쌓은 지식과 경험이 그 기준입니다.

몸을 침해하는 진료라면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리(92다25885 · 2002다48443)도 들었습니다. 계약 때는 개괄적이던 진료가 설명과 동의를 거치며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을 띤다고 했습니다.

거부할 자유와 생명이라는 한계 이유 1 나 · 다

강제로 진료받아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환자는 진료를 받을지 스스로 정하고 진료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습니다(민법 제689조 제1항). 계약을 이어 가면서 구체적인 진료의 변경을 요구할 수도 있고, 의사는 원칙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다른 적절한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그러나 생명은 모든 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입니다. 대법원은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을 들어, 환자가 요구해도 생명과 직결된 진료를 멈추거나 빼는 일은 극히 제한적으로 신중하게 가려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헌법과 자살관여죄를 처벌하는 형법,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취지를 보태면, 회복 가능성이 높은 응급 상황에서 생명과 직결된 치료를 피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거부가 자살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침해될 제3자의 이익이 없으며, 생명과 대등한 헌법적 가치에 기초했다고 평가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그 결정도 존중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생명과 결정을 견주기 어려울 때 판결요지 · 이유 1 다

수혈하지 않기로 하고 수술했는데 수혈 없이는 생명이 위험한 응급상태가 됐다면, 생명을 지킬 수혈을 고려하는 쪽이 원칙입니다. 그렇지만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의무가 생명 보호와 대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평가된다면, 그 점도 고려해 진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때인지는 사정을 모아 가립니다. 환자의 나이와 지적 능력, 가족관계, 거부에 이른 배경과 경위 · 목적, 그 뜻이 일시적인지 오랜 기간 이어진 확고한 종교적 · 양심적 신념인지, 실질적으로 자살을 노린 것인지,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칠 여지가 없는지입니다.

그리고 생명과 자기결정권 가운데 어느 쪽이 무거운지 저울질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에서, 의사가 직업적 양심에 따라 둘 가운데 하나를 존중하는 쪽으로 행동했다면 그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은 밝혔습니다.

그 판단에 앞서 갖출 것 판결요지 · 이유 1 라

이런 판단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설명과 결정 어디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환자는 수혈이 왜 필요한지, 받지 않으면 생명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대체 방법이 어디까지 효과가 있고 어디서 한계가 있는지를 충분히 듣고 이해한 뒤 진지하게 정해야 합니다.

실제로 벌어진 일도 설명과 결정 때 예상한 범위 안이어야 합니다. 그 상황에서 환자가 거부를 거둘 뜻이 없는지 다시 물어 확인할 몫은 의사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대체 수술 방법이 수혈만큼 출혈을 막지 못한다면 그만큼 과다출혈로 숨질 위험이 커집니다.

그래서 의사는 수술할 필요성을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따지고, 그때 의료 수준에 맞춰 출혈 위험을 줄일 사전준비나 시술방법을 쓰도록 힘써야 하며, 예상보다 많은 출혈로 위험이 현실이 되면 수술을 이어 갈지 다시 따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환자의 선택은 위험이 현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기대 위에서 내린 결정일 가능성이 크니, 위험이 드러난 뒤에도 수술을 이어 가는 것을 그 결정에 따른 진료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이유 3 · 5

대법원은 먼저 원심 이유의 한 대목을 바로잡았습니다.

환자의 결정과 생명을 구할 의사의 의무가 맞부딪치면 원칙적으로 결정을 앞세워야 한다는 원심의 설시는 적절하지 않다고 짚었습니다. 유효한 자기결정권이라도 생명과 대등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원심이 든 논거는 대체로 위 법리에 들어맞는다고 보았습니다.

수술 전 설명의 내용, 환자의 나이와 가족관계, 수술에 이른 경위, 거부의 배경과 확고한 종교적 신념, 각서로 드러난 진지한 결정, 수술 중 가족에게 다시 물은 일을 모으면 이 사건에는 둘을 견주기 힘든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수혈하지 않은 사정만 가지고는 피고인이 의사로서 진료상의 주의의무를 저버렸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원심의 결론을 받아들여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판단하지 않은 것

  • 각서의 「민·형사상의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에 책임을 없애는 힘이 있는지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각서를 환자가 진지하게 결정했음을 보여 주는 사정으로 들었습니다.
  • 몇 살 이상이면, 어떤 신념이면 생명과 대등하다고 보는지 일반적인 선을 긋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사정을 함께 헤아려 그때그때 정하라는 것이 판결의 틀입니다.

실무에서 읽는 법

의사를 처벌하지 않은 결론은 환자의 거부만으로 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설명과 재확인이 수술 전과 직전, 도중에 겹겹이 이뤄진 이 사건의 사정이 그 결론을 받쳤습니다.

의료인이라면

대법원이 든 사정에는 위험 설명과 함께, 각서로 드러난 진지한 결정과 수술 도중 가족에게 다시 물은 일이 들어 있었습니다.

대체 수술이 출혈을 다 막지 못한다면, 수술할 필요성을 평소보다 세심하게 따지고 위험이 현실이 될 때 이어 갈지를 다시 판단할 주의가 의사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환자와 가족이라면

환자가 숨진 무거운 결과에도, 수혈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진료상 주의의무를 어겼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혈 거부가 언제나 존중되는 것도 아닙니다. 원칙은 생명을 지키는 수혈 쪽에 있었고, 결정이 생명과 대등하게 평가되는 것은 예외로 한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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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법원 2014. 6. 26. 선고 2009도14407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 이 해설은 판결 원문을 쉬운 말로 옮긴 것이며, 개별 사건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