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 대법원
- 선고
- 2011. 9. 29.
- 사건
- 2008다16776 · 민사
- 결론
- 원심판결 중 혈액제제를 만든 회사에 대한 부분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에 환송 · 전신이 감염 뒤에 세워진 다른 회사에 대한 원고들의 상고는 기각
무엇을 다퉜나
혈우병을 앓는 환자들과 가족들이 피고로 삼은 곳은, 혈액제제를 만든 회사와 그 회사와 함께 제제를 만들어 공급했다고 주장한 다른 회사, 이렇게 두 곳입니다.
- 혈액제제를 만든 회사는 1990년 초반 무렵부터 B형 혈우병 치료제인 혈액제제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유통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국내 B형 혈우병 환자 가운데 HIV 감염자가 무리 지어 나왔습니다.
- 환자들이 든 것은, 이 제제를 맞은 뒤 HIV에 감염됐다는 데 따른 제제의 결함이나 회사의 과실입니다.
- 1심에서 일부 이긴 쪽은 환자 한 명과 그 가족입니다. 하지만 원심은 이 제제 때문에 감염됐다고 볼 수 없다며 그 부분까지 청구를 기각했고, 일부 환자는 감염이 확인된 날짜나 제제를 맞은 때를 이유로 따로 배척했습니다.
그러자 환자와 가족들이 상고했습니다.
법원이 본 것
제약회사를 상대로 한 인과 추정 판결요지 [1] · 이유 1 가
먼저 대법원은 의약품 제조물책임도 의약품의 결함이나 제약회사의 과실이 손해와 인과관계로 이어져야 성립한다는 원칙을 확인합니다.
다만 의약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대개 회사 안 사람만 알고, 제조는 고도의 전문 영역이어서 바깥의 일반인이 결함이나 과실을 빈틈없이 밝히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정을 들어, 맞기 전에는 감염이 의심되는 증상이 없었고, 맞은 뒤 감염이 확인됐으며, 그 제제가 바이러스에 오염됐을 상당한 가능성까지 증명되면 결함이나 과실이 감염으로 이어졌다고 추정한다고 했습니다. 증명의 짐을 이렇게 덜어 주는 것이 손해를 공평하게 분담시킨다는 배상 제도의 지도 원리에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오염됐을 상당한 가능성은 자연과학적으로 뚜렷이 증명되지 않아도, 투여와 감염의 시간적 근접성, 통계적 관련성, 제조공정, 그 바이러스 감염의 의학적 특성, 원료 혈액 검사법의 정확성 같은 여러 사정을 아울러 따져 가늠한다는 것입니다.
회사는 자기 제제에 결함이 없다는 등 감염원이 자기 제제가 아님을 증명해 추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환자가 감염이 추정되는 기간에 다른 회사 제제를 맞았거나 수혈을 받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추정이 뒤집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염됐을 상당한 가능성 판결요지 [2] · 이유 1 나
- 먼저 환자들에게는 투여 전 감염을 짐작게 할 증상이 없었고, 항체가 생기기까지 걸리는 보통의 기간이 지난 뒤 감염이 확인됐습니다.
- 그 무렵 국내에서 만든 혈액제제는 이것 하나였는데, 이 제제를 맞은 혈우병 환자는 맞지 않은 환자보다 HIV 감염 확률이 통계상 의미 있게 높았다는 역학조사가 있었습니다.
- 게다가 이 제제는 수백에서 수만 명의 피를 한데 모아 만들기 때문에, 피를 낸 사람 가운데 한 명만 감염돼 있어도 그 묶음으로 만든 제제 전부가 오염될 가능성이 높은 약입니다.
- 또 회사가 그 무렵 쓴 1세대 검사법은 양성을 음성으로 잘못 읽을 확률이 약 20%로 높아, 감염된 사람의 피가 음성으로 나와 원료로 쓰였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 회사가 원료로 피를 사들인 사람 가운데 둘이 뒤에 HIV 양성으로 확인됐고, 그 피가 제제 제조에 쓰였거나 쓰였을 수 있었습니다. 분자생물학 조사에서도 많은 감염 환자와 그 둘의 바이러스는 서로 가까운 무리라는 결과입니다.
- 회사는 몇몇 제조번호의 제조 · 유통을 부인하면서 원료 혈액과 공급처 자료를 내지 않았는데, 일부 환자의 의무기록에는 그 번호의 제제를 맞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이 사정들로 세 요건이 갖춰졌다고 보아, 제제의 결함이나 회사 과실이 감염으로 이어졌다고 추정했습니다. 피를 판 사람과 환자의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가 꼭 일치하지 않는다거나, 일부 환자가 오염 여부를 알 수 없는 외국산 제제나 수혈을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추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판단입니다. 그래서 이를 부정한 원심은 혈액제제 제조자를 상대로 한 소송의 증명책임 법리를 잘못 읽었다는 것입니다.
원심이 따로 배척한 환자들 이유 1 다
원심이 감염이 확인된 날짜나 제제를 맞은 때를 이유로 따로 배척한 환자들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짚은 원심의 잘못은 넷입니다.
- 먼저 감염 확인일을 정하며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서류에 기대고, 공적 기관의 조사를 거친 보고서 내용을 따르지 않은 대목은 증거의 증명력을 잘못 다뤘다고 했습니다.
- 또 제제를 맞기 전에 이미 감염됐다고 본 대목은, 그 근거가 된 의견서를 쓴 사람이 원심 법정에서 그 내용이 잘못이라고 증언한 점에 비추어 증거 판단이 자유심증의 테두리를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 감염 확인 전에 제제를 맞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본 대목은, 공무원이 감염 원인을 찾으며 남긴 공문서 기록과 유통 경로, 분자생물학 조사를 들어 감염 확인 전 투여가 있었다고 봄이 옳다는 것입니다.
- 끝으로 여덟 달 가까이 병원 치료 기록이 없는 환자는 그동안 집에서 제제를 맞았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투여 시점부터 더 따져 보라고 했습니다.
잠복기가 긴 감염과 시효의 시작 판결요지 [3] · 이유 1 라
민법 제766조 제2항이 시효의 기산점으로 정한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가해행위가 있었던 날이 아니라 손해의 결과가 현실적으로 생긴 날을 뜻한다고 대법원은 다시 적었습니다(77다1894, 1895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고).
감염의 잠복기가 길거나 감염 당시 병이 어디까지 진행할지 내다보기 어려울 때 손해가 생긴 때를 일률적으로 감염일로 잡으면, 피해자는 감염일에는 장래 손해가 불확실해 청구하지 못하고 손해가 생긴 뒤에는 시효가 지나 청구하지 못하는 부당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감염 자체의 손해와 별개로, 증상이 나타나거나 병이 진행해 생긴 손해는 그때 현실적으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기록상 AIDS의 잠복기는 약 10년으로 길고, HIV에 감염됐다는 것과 AIDS 환자가 됐다는 것은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대법원은 AIDS 환자가 된 손해는 실제로 AIDS 환자가 됐을 때 생겼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이 점을 살펴 시효가 지났는지를 심리하라고 짚었습니다.
전신이 감염 뒤에 세워진 회사 이유 2
다른 회사의 전신이 세워진 것은 환자들이 감염된 뒤인 1999년입니다. 그러니 이 회사 제제로 감염됐다고 할 수 없다는 원심은 옳았고, 두 회사가 함께 제제를 만들어 공급했다는 상고이유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혈액제제를 만든 회사에 대한 부분만 깨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내고, 다른 회사를 상대로 한 상고는 물리쳤습니다.
판단하지 않은 것
- 대법원은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판단했을 뿐, 배상할 손해의 범위와 액수는 판단 밖입니다.
- 또 시효가 이미 끝났는지는 판가름하지 않았습니다.
실무에서 읽는 법
결국 제조 과정을 들여다볼 수 없는 쪽의 증명 부담을 덜어 주는 추정이, 의약품 제조물책임에서는 세 요건으로 정리됐습니다.
의료인이라면
대법원이 세운 추정은 혈액제제를 만든 제약회사를 상대로 한 것이었고, 근거로 든 것도 제조 과정을 회사 내부 사람만 알 수 있다는 사정이었습니다.
또 시효의 시작을 손해가 현실화된 때로 본 대목은, 잠복기가 길어 감염 때 장래 손해를 알기 어려운 경우를 두고 한 판단입니다.
환자와 가족이라면
원료 혈액과 제조 자료가 회사 쪽에 있을 때, 환자 쪽은 투여 전후의 경과와 오염 가능성을 받치는 사정을 쌓아 추정을 세웠습니다.
또 HIV에 감염된 때와 AIDS 환자가 된 때를 구별해, 병이 진행해 생긴 손해는 그때 생긴 것으로 볼 여지가 열렸습니다.
추정 · 증명 더 보기
같은 쟁점의 판례
- 의료과실의 추정과 설명의무, 결과만으로 과실을 추정하지 않음대법원 2005다5867
- 후유장해와 과실 추정대법원 2017다203763
- 수술 뒤 감염과 과실 추정대법원 2024다204665
출처 · 대법원 2011. 9. 29. 선고 2008다16776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 이 해설은 판결 원문을 쉬운 말로 옮긴 것이며, 개별 사건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