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해설과실 판단 기준

1987년 응급 수혈과 에이즈 감염, 혈액 공급 기관의 책임

김은정 변호사법무법인 CNE 김은정 의료전문변호사작성

1987년 피를 토하며 쇼크에 빠진 환자에게 응급 수혈로 에이즈 바이러스가 옮았고, 감염을 안 지 몇 달 만에 숨진 사건입니다. 채혈 당시 법이 검사를 요구하지 않았어도 혈액 공급 기관이 책임을 지는지가, 이 판결에서 먼저 보실 대목입니다. 서울지방법원은 채혈 때 검사를 거른 혈액 공급 기관에 배상 책임을 지우고, 급박한 상황에서 수혈한 병원과 나라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습니다.

법원
서울지방법원
선고
1993. 12. 22.
사건
92가합46696 · 민사
결론
혈액원을 운영하며 혈액을 공급한 기관의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하고, 나라와 병원에 대한 청구와 그 기관에 대한 나머지 청구는 기각

무엇을 다퉜나

소송은 숨진 환자의 부모와 형제자매가 냈고, 피고는 나라와, 혈액원을 운영하며 병원에 혈액을 공급하던 기관, 수혈을 한 병원입니다.

  • 환자는 어릴 때부터 이 병원에서 식도협착증 등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었습니다.
  • 1987년 1월 위장관 출혈로 새벽에 피를 많이 토했고, 업혀 온 응급실에서 다시 많은 피를 토해 쇼크에 빠졌습니다. 수액을 빠르게 넣어도 나아지지 않아서, 바로 수혈하지 않으면 숨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 이때 병원은 공급받은 혈액과 환자 혈액의 혈액형 · 교차반응 검사를 한 뒤 수혈했고, 피를 계속 토하자 두 차례 더 수혈했습니다. 그 뒤 환자는 응급수술을 받고 며칠 뒤 퇴원했습니다.
  • 그 혈액은 1986년 10월 헌혈된 것입니다. 그런데 헌혈자가 1988년 다시 헌혈할 때 에이즈 항체 양성으로 나오자 지난 헌혈을 추적해 이 환자에게 수혈된 사실이 드러났고, 1991년 검사에서 환자도 양성이었습니다.
  • 결국 감염을 통보받은 환자는 큰 충격 속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1992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래서 유족이 내세운 것은, 나라가 1985년 감염자가 나온 뒤 곧바로 모든 혈액을 검사하게 하지 않았고 혈액 공급 기관은 검사 없이 혈액을 공급했다는 점입니다. 병원에는 수혈 전 감염 여부를 검사하지 않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수혈을 감염 위험 설명 없이 했다는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법원이 본 것

감염과 사망 사이 이유 2

먼저 환자는 지병을 지닌 채 감염돼 면역 기능을 잃었고, 기왕의 병이 나빠져 살아가기 어려운 처지가 됐습니다. 그 처지를 알게 된 환자가 앞서 본 경위로 숨진 이상, 법원은 감염과 사망을 잇는 상당인과관계를 받아들였습니다.

나라의 에이즈 대책 이유 1 라 · 3 가

  • 1985년 4월부터 관계 부처와 혈액 공급 기관, 의료계가 대책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 이어 진단시약을 들여와 미군 주둔 지역의 표본 혈액부터 검사했고, 1986년 1월부터 위험 집단 검사를 전국으로 넓혔습니다.
  • 그리고 법이 생기기 전인 1987년 7월부터 헌혈 혈액 전부를 검사하게 됩니다.

법원은 이를 검사 기술과 인력 · 장비, 사회와 보건경제 사정까지 감안한 합리적 조치로 보았습니다. 그러니 그 전에 모든 헌혈 혈액을 검사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나라에 고의나 과실의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혈액 공급 기관의 주의의무 판시사항 · 판결요지 · 이유 3 나

반면 법원은 수혈용 혈액을 채혈해 병원에 공급하는 기관이 의사와 환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혈액의 안전에 관해 극히 높은 주의의무를 진다고 했습니다. 그 핵심은 위험을 미리 알아차릴 의무와 그 결과를 막을 의무입니다.

1985년 국내 감염 보고가 나오면서 수혈로 퍼질 위험도 알려졌고, 이 기관은 나라의 대책 회의에도 여러 번 참석했습니다. 그러니 1986년 10월 채혈 때 헌혈로 인한 감염 위험을 충분히 내다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채혈 당시 법에 에이즈 검사 의무가 없었더라도, 혈액을 공급하는 기관은 법이 정한 검사 의무를 넘는 높은 결과회피의무를 지므로 검사하지 않아 수혈로 감염된 데 대한 업무상과실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헌혈자가 항체가 아직 생기지 않은 기간에 있었다면 검사해도 몰랐을 것이라는 기관의 주장도 물리쳤습니다. 그런 상태였다고 볼 증거가 없고, 검사를 하지 않은 사건에서 검사를 전제로 한 주장이라는 이유입니다.

병원의 수혈과 설명 이유 3 다

혈액 공급 기관은 검사를 마친 혈액을 곧바로 밀봉해 내보내고, 병원은 세균 감염 위험 때문에 개봉하자마자 혈액형 · 교차반응 검사만 하고 수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의사가 감염 여부를 따로 검사하지 않은 데 잘못은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입니다.

또한 위독한 환자에게 지체 없이 한 수혈은 생명을 지키려는 불가피하고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감염 가능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지는 않았지만, 미리 설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고 가족이나 다른 건강한 사람의 피를 받아 수혈할 수도 없던 급박한 사정입니다.

법원은 충분히 설명을 들었더라도 수혈에 동의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결국 감염이 병원의 수혈 방법이나 설명의무 위반에서 온 결과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배상의 범위 이유 4

  • 환자는 지병 탓에 제대로 치료받아도 노동능력의 60%를 잃은 상태였고, 기대여명은 14년이었습니다. 법원은 감염으로 숨져 잃게 된 나머지 40% 몫만 일실수입으로 셈했습니다.
  • 한편 위자료를 정하면서는 혈액 공급 기관이 사고 뒤 유족에게 보상 위자료를 이미 건넨 점도 참작한 것입니다.

판단하지 않은 것

  • 1993년 서울지방법원 1심의 판단이라서, 헌혈 혈액 검사 체계가 막 자리 잡던 1980년대 중반의 일을 다뤘습니다.
  • 설명을 들었어도 동의했으리라는 추정은 생명이 위독해 미리 설명할 수 없던 이 사건의 사정을 두고 한 것입니다.

실무에서 읽는 법

즉 판결은 혈액이 거쳐 간 세 자리, 나라와 혈액 공급 기관과 병원의 몫을 하나씩 갈라 보았다는 점을 보시면 됩니다.

의료인이라면

법원은 밀봉된 혈액을 열자마자 혈액형 · 교차반응 검사만 하고 수혈할 수밖에 없다는 병원 사정을 인정했습니다.

특히 위독한 환자에게 지체 없이 한 수혈은, 미리 설명하지 못했어도 설명을 들었다면 동의했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환자와 가족이라면

채혈 당시 법이 검사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로 혈액 공급 기관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일실수입은 지병으로 이미 줄어 있던 노동능력을 뺀 몫으로 셈했고, 위자료에는 먼저 받은 보상 위자료가 참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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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지방법원 1993. 12. 22. 선고 92가합46696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 이 해설은 판결 원문을 쉬운 말로 옮긴 것이며, 개별 사건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