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해설설명의무

수혈로 옮은 에이즈, 혈액원의 과실과 수혈 설명

김은정 변호사법무법인 CNE 김은정 의료전문변호사작성

이 판결은 자궁 수술 뒤 빈혈로 수혈을 받은 환자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건으로, 혈액원과 병원이 각각 어떤 책임을 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대법원은 위험군의 헌혈을 걸러 내지 못한 혈액원의 과실과, 수혈의 위험을 따로 설명하지 않은 병원의 책임을 각각 인정하면서 두 책임은 서로 연대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법원
대법원
선고
1998. 2. 13.
사건
96다7854 · 민사
결론
혈액원 업무를 하는 기관과 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

무엇을 다퉜나

감염된 환자와 그 가족이 소를 냈습니다. 상대는 혈액원 업무를 하며 혈액을 공급한 기관과, 수혈을 한 병원 쪽 학교법인입니다.

  • 환자는 1989년 5월 방광요도류와 자궁탈출증을 치료하려고 이 병원에 입원해 질을 통한 자궁적출술을 받았습니다.
  • 수술 중 출혈로 혈색소 수치가 정상 아래로 떨어지고 어지럼증을 호소하자, 병원은 공급받은 농축적혈구 2단위를 교차반응 검사 뒤 수혈했습니다.
  • 그런데 그 가운데 한 단위는 수혈 닷새 전 길거리 헌혈 행사에서 받은 혈액입니다. 혈액원의 효소면역측정법 검사에서는 음성이었지만, 실제로는 감염된 혈액이었습니다.
  • 같은 헌혈자가 그해 11월 다시 헌혈했을 때 양성으로 나오자, 혈액원은 지난 헌혈을 추적해 병원에 알렸습니다. 결국 환자는 12월 감염을 확인받게 됩니다.

원심은 혈액원 운영 기관과 학교법인에 각각 위자료를 물리고, 두 채무를 연대 관계로 묶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두 피고가 상고했습니다.

법원이 본 것

혈액원이 지는 주의의무 판시사항 [1] · 판결요지 [1] · 이유 1 가

혈액을 채혈하고 보존해 공급하는 일은 그 성질상 깊은 지식이 필요하고, 수혈받는 사람의 생명과 몸에 바로 닿습니다. 잘못되면 국민 보건에 넓고 무거운 해가 생기니, 혈액원은 혈액의 순결과 관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출발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채혈하는 시기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높은 의학기술 수준에 맞춰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감염 위험군의 헌혈을 배제하는 등 위험을 내다보고 결과를 피하는 의무입니다.

어겼는지는 그때 의학 수준, 결과가 생길 가능성, 침해된 이익의 무게, 결과를 피하려다 잃는 이익을 함께 따져 가린다고 했습니다(94다47803).

이 혈액원의 과실 판시사항 [2] · 판결요지 [2] · 이유 1 나 · 다

  • 효소면역측정법은 항체를 거의 놓치지 않지만, 감염 뒤 항체가 생기기 전 기간의 혈액은 가려내지 못했습니다. 또한 항원검사법은 비싸고 오래 걸려서, 집단 헌혈 검사로 쓰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 한편 이 헌혈자의 신상카드에는 직업과 근무처 칸이 비어 있었고, 뒷면 설문 열여섯 항목에 에이즈 관련 질문이 없었던 것입니다. 설문 서명도 헌혈자 본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 무렵 혈액원 운영 기관은 헌혈하면 에이즈 감염 여부를 검사해 준다는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경로의 감염 앞에서는 검사만으로 무방비라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혈액원은 헌혈 대상을 비교적 건강한 혈액을 가졌다고 볼 집단으로 좁히고, 직업과 생활관계, 건강 상태를 조사하고 문진해 위험이 높은 사람이 스스로 헌혈을 그만두게 이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검사를 해 준다고 알려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헌혈을 감염 확인 기회로 쓰게 부추겼고, 이 헌혈자에게는 조사도 문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과를 피할 주의의무를 저버린 과실이 혈액원에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입니다.

다만 수혈로 감염될 수 있고 가족의 피로 수혈받는 길도 있다는 점을 환자에게 알릴 의무는 혈액원이 아니라, 환자에게 직접 피를 넣는 의사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혈액에 위험 경고를 표시하지 않거나 대중에게 알리지 않은 것까지 과실에 넣은 원심은 잘못이지만, 나머지 과실만으로도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결론은 정당했습니다.

드문 위험과 설명의무 판시사항 [3] · 판결요지 [3] · 이유 2 가

응급환자이거나 그 밖에 따로 사정이 없다면, 의사는 몸에 위험을 주는 수술 같은 의료행위에 앞서 환자가 받을지 스스로 정하도록 그때 의료수준에서 상당한 사항을 설명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위험이 드물다는 것만 들어 이 의무를 벗을 수는 없다고 짚었습니다. 그 치료에 늘 따라붙는 전형적 위험이거나 되돌릴 수 없는 무거운 위험이라면, 드물어도 설명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94다3421 · 95다56095).

이런 설명 없이 승낙도 받지 않고 한 의료행위는, 치료에 과실이 없더라도 승낙할 권리를 해친 위법이 된다고 했습니다.

수술 뒤 수혈의 설명 판시사항 [4] · 판결요지 [4] · 이유 2 가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은 수혈에 전형적으로 따르는 위험이고, 판결 당시 의학으로는 치료 방법이 없어 회복할 수 없는 피해였습니다. 의학을 모르는 환자로서는 내다볼 수 없는 일이라 드물어도 설명을 건너뛸 수 없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수술 중 출혈로 수술 뒤 수혈할 때 감염 위험은 그 수술과 별개인 수혈 자체의 위험이므로, 의사는 수술에 대한 설명 · 동의와 따로 수혈의 위험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심은 감염 가능성이 의학계에 두루 알려졌는데도, 특별히 긴급하지 않은 수혈에 앞서 감염 위험에 관한 설명이 아예 없었다고 사실을 정했고, 대법원은 그 인정과 판단을 모두 수긍했습니다.

두 책임은 따로 판시사항 [5] [6] · 판결요지 [5] [6] · 이유 2 나

공동불법행위가 되려면 각 행위가 따로 불법행위 요건을 갖추면서, 객관적으로 얽혀 함께 위법하게 손해를 끼쳐야 합니다(87다카2723 · 96다46903).

먼저 혈액원의 과실은 환자가 감염된 몸의 상해 자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의사의 설명 부족은 상해가 났는지와 상관없이, 수혈받을지와 어떤 혈액을 받을지 정할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두 행위는 하나의 결과를 함께 낸 것이 아니고 결과도 서로 구별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공동불법행위가 아니어서 두 배상 채무가 연대하지 않는 별개의 채무라는 원심 판단도 그래서 옳았습니다.

판단하지 않은 것

  • 수혈 과정의 치료상 과실은 이 판결에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 위자료를 얼마로 정했는지는 상고이유가 아니어서 이 판결에 적히지 않은 대목입니다.

실무에서 읽는 법

판결은 혈액이 감염돼 있던 책임과, 수혈의 위험을 알리지 않은 책임을 서로 다른 자리에 두었습니다.

의료인이라면

의사 쪽에 물은 책임은 감염 그 자체가 아니라 수혈 여부를 정할 기회를 잃게 한 데 대한 위자료였고, 혈액원 운영 기관과 연대하지 않는 별개의 채무로 정해졌습니다.

판결이 든 설명의무는 응급환자이거나 그 밖에 따로 사정이 있는 경우를 뺀 것이었습니다.

환자와 가족이라면

대법원은 수혈 위험이 드물다는 이유만으로 설명을 건너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혈액원의 과실은 검사로 가려낼 수 없는 위험군의 헌혈을 조사와 문진으로 막지 않은 데서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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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쟁점의 판례

출처 · 대법원 1998. 2. 13. 선고 96다7854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 이 해설은 판결 원문을 쉬운 말로 옮긴 것이며, 개별 사건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