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 대법원
- 선고
- 2017. 11. 9.
- 사건
- 2013다26708 · 민사
- 결론
- 원심판결 일부 파기환송 · 나머지 상고 기각
무엇을 다퉜나
혈우병은 피를 굳게 하는 응고인자가 모자라 작은 상처에도 피가 잘 멎지 않는 선천성 질환입니다. 그래서 1965년쯤부터 혈장에서 응고인자를 뽑아 농축한 혈액제제를 맞는 치료가 주로 쓰였습니다.
피고 회사가 동결 건조 혈장 제제를 만들어 공급한 것은 1974년부터이고, A형 · B형 혈우병 치료제는 1989년쯤부터입니다. 1985~1990년에는 피를 사들인 매혈로 원료를 마련했고, 1991년부터는 수입 혈장도 썼습니다.
또 회사는 1987년 10월 열처리 공정을, 1989년 6월 화학적으로 바이러스를 불활성화하는 공법을 도입했습니다. 국내에서 모든 헌혈 혈액에 C형 간염 항체검사를 한 것은 1991년 5월부터입니다.
C형 간염 감염이 확인된 혈우병 환자들은 제제를 만든 회사, 혈액을 공급한 기관, 국가 셋을 피고로 삼았습니다. 원심의 결론이 환자마다 갈렸기 때문에, 환자들과 회사, 혈액 공급 기관이 모두 상고했습니다.
법원이 본 것
진단법이 없던 시기의 문진 의무 판결요지 [1] · 이유 2 가 (1)
1991년 5월 전에 감염된 환자들에 대해 원심은 진단 기술이 없던 때라 결함이 아니고, 문진만으로 감염 혈액을 걸러 낼 수 없었을 것이라며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반면 대법원은 혈액제제 회사에 순결한 혈액을 확보해 제제를 통한 감염 위험을 없애야 하는 매우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진다고 했고, 그 내용으로 당시 의학 수준에 맞춘 검사와 문진 등으로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의 혈액을 걸러 내는 조치를 들었습니다.
문진 같은 조치를 실제로 취했다는 사실은 원칙적으로 회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판결요지 [1]의 끝 문장입니다.
실제로 1975년쯤 혈액으로 옮는 비A형 · 비B형 간염이 알려졌고, 1978년쯤 매혈이 그 가장 중요한 위험요소라는 논문이 나왔습니다. 1992년쯤에는 매혈자의 C형 간염 양성률이 31.0%라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직업 · 황달 같은 증상 · 음주 · 마약 경험을 묻는 문진으로 감염력을 낮출 수 있었다면, 문진 누락과 감염의 연결을 쉽게 끊어 낼 수 없다는 것이 문진 대목의 결론입니다. 원심은 문진을 했는지와 감염력을 낮출 수 있었는지부터 심리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대체 검사(간 수치 검사 · B형 간염 항체검사)를 하지 않은 것은 당시 도입 시기와 혈액 수급 사정을 들어 과실이 아니라고 한 원심 판단이 유지됐습니다.
인과 추정이 깨지는가 판결요지 [4] · 이유 2 바 · 3 나
혈액제제로 감염됐다는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세 요건은 앞선 대법원 판결(2008다16776)이 세운 것 그대로입니다.
- 투여 전에는 감염을 짐작게 하는 증상이 없었을 것
- 제제를 맞은 뒤 감염이 확인됐을 것
- 그 회사 제제에 바이러스 오염 가능성이 상당했다는 점이 증명될 것
이때 이 가능성의 증명은 자연과학적으로 엄밀할 필요가 없습니다. 투여와 감염 사이의 시간 간격, 통계상 관련, 제조 과정, 원료 혈액을 검사하는 방법의 정확도, 바이러스의 의학적 성질 같은 사정을 함께 보아 가늠합니다.
원심은 일부 환자들이 1991년 5월 뒤의 제제도 맞았지만, 불활성화 공법 도입 전에 만든 수십 배 위험한 제제를 더 오래 맞았으니 추정이 깨졌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감염추정 시기에 수혈을 받았거나 다른 회사 제제도 투여받았다 해도 그것만으로 추정이 깨지지 않고, 그 다른 제제의 오염 가능성이 더 높거나 투여 기간이 더 길었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습니다.
반대로 회사의 상고에서 유지된 것은, 5,000~10,000명 이상의 혈장을 섞는 제조 방식 등을 들어 감염과 제제의 결함을 이은 원심 판단입니다. 원심은 회사가 불활성화 공법 실시를 스스로 감사하고도 그 자료를 법정에 내지 않은 점 등을 들어 회사 주장을 물리쳤습니다.
잠복기가 긴 감염의 10년 시효 판결요지 [5] · 이유 3 다
10년 시효를 세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가해행위가 있던 날이 아니라 손해가 현실로 생긴 날입니다. 잠복기가 길거나 병의 진행을 내다보기 어려운 감염이면, 증상이 드러나거나 병이 한 단계 나아간 때 그 몫의 손해가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법리에 따라 원심은 환자마다 시점을 달리 잡았는데, 급성간염은 처음 발견된 날부터 최대 잠복기 160일이 지난 때, 항바이러스치료를 받은 사람은 그 치료를 받은 때가 기산점입니다.
만성간염 환자들은 실제 간 손상 증상이 나타난 때부터 셌는데, 소 제기 10년 전보다 앞서 증상이 나타났다는 자료가 없으니, 회사의 시효 항변이 대법원에서도 힘을 잃은 것입니다.
반면 시효가 끝났다고 본 환자 셋에 대해서는, 회사가 세운 재단이 치료비를 지원했어도 회사의 채무 승인이 아니고 시효 항변이 권리남용도 아니라는 원심이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간염의 노동능력 상실과 위자료 판결요지 [3] [6] · 이유 2 라 · 3 라
먼저 원심은 노동능력상실률 표들에 간염 항목이 없다며 감염 환자들의 노동능력 상실을 부정했습니다. 간질환 · 간손상에 따른 장애 항목이 있는지 살피고, 있다면 감정을 거쳐 상실률을 정했어야 했다는 것이 대법원의 지적입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위자료를 정할 때 간염으로 노동능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증액 사유로 썼습니다. 대법원이 이 부분도 파기한 것은, 재산상 손해를 정할 수 있는데도 위자료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메우려 했기 때문입니다.
첨부문서의 경고와 혈액 공급 기관 판결요지 [2] · 이유 2 가 (3) · 4
제제 첨부문서 첫머리에는 감염 위험이 없다는 취지가 있었지만, 부작용란에 적힌 것은 혈청 간염이나 비A형 · 비B형 간염의 위험입니다.
특히 주사제의 주된 사용자는 혈우병을 치료하는 의사이고, 의사가 첨부문서를 읽으면 감염 위험을 알 수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대법원은 회사의 표시상 과실도, 국가의 관리 · 감독 책임도 없다는 원심을 유지했습니다.
한편 혈액 공급 기관에서는 1994~2003년 양성 혈액을 음성으로 잘못 적는 등으로 26건이 수혈용으로 나갔고, 그 혈액을 수혈받은 뒤 감염된 환자 한 사람에게 배상하게 한 원심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판단하지 않은 것
- 파기된 부분에서 문진 조치를 했는지, 간염의 노동능력상실률이 얼마인지, 위자료가 얼마인지는 대법원이 정하지 않았고 원심이 새로 심리합니다.
- 과실 없이도 책임을 지는 제조물 책임법은 2002년 7월 이후 공급된 제조물에만 적용돼, 이 사건은 과실책임의 틀 안에서만 판단됐습니다.
- 다툼은 제제를 만든 회사 · 혈액 공급 기관 · 국가의 책임을 두고 벌어졌을 뿐, 제제를 처방한 의료진의 진료는 쟁점 밖입니다.
실무에서 읽는 법
같은 감염이라도 감염된 때, 맞은 제제가 만들어진 때, 증상이 드러난 때가 환자마다 달라 쟁점마다 다른 시점이 기준이 됐습니다.
의료인이라면
이 판결은 혈우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첨부문서의 부작용란을 읽으면 감염 위험을 알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제조 회사에 표시상 과실이 없다는 원심을 유지했습니다.
또 급성간염 · 항바이러스치료 · 만성간염 증상 발현처럼 진료 경과의 시점을 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은 것도 판결이 수긍한 대목입니다.
환자와 가족이라면
이 판결은 다른 제제를 더 오래 맞았거나 그 제제가 더 위험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혈액제제 감염의 인과 추정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판결은 노동능력상실률 표에 간염 항목이 없더라도 간질환 관련 장애 항목이 있는지부터 따져, 그 항목이 있으면 감정 뒤에 상실률을 매겨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과실 판단 기준 더 보기
같은 쟁점의 판례
- 의료과실의 추정과 설명의무, 결과만으로 과실을 추정하지 않음대법원 2005다5867
- 후유장해와 과실 추정대법원 2017다203763
- 수술 뒤 감염과 과실 추정대법원 2024다204665
출처 · 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3다26708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 이 해설은 판결 원문을 쉬운 말로 옮긴 것이며, 개별 사건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