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해설손해 산정

약속한 불임수술을 하지 않아 셋째 아이가 태어난 사건, 법원은 분만비와 위자료만 손해로 보고 양육비 · 교육비는 손해가 아니라고 했다

김은정 변호사법무법인 CNE 김은정 의료전문변호사작성

이 판결은, 약속한 불임수술이 이뤄지지 않아 아이가 태어났다면 무엇까지 손해로 셈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둘째를 제왕절개로 낳으며 불임수술도 해 달라고 했던 부부는, 수술이 되지 않은 줄 모르고 셋째를 낳았습니다. 법원은 병원의 계약 불이행 책임을 인정했지만, 손해로 본 것은 분만비와 위자료까지입니다.

법원
서울고등법원
선고
1996. 10. 17.
사건
96나10449 · 민사
결론
항소 일부 인용(병원 측 항소) · 환자 쪽 항소 기각

무엇을 다퉜나

먼저 산모는 둘째 임신 21주에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산전진찰을 받았고, 아이가 거꾸로 선 둔위라 제왕절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1994년 1월 분만을 위해 입원하면서 부부는 수술승낙서를 내고, 이미 아이가 둘이라 가족계획상 불임수술도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병원은 이를 이의 없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수술은 다음 날로 잡혔지만 진통이 예정보다 일찍 와, 그날 저녁 퇴근한 주치의 교수 대신 3년차 전공의가 제왕절개를 했습니다. 병원은 그 수술에서 불임수술을 하지 않았고, 그 사실을 부부에게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불임수술이 된 줄 알던 산모가 다시 임신해 다른 의원에서 셋째 아이를 낳은 것이 1995년 7월입니다.

그 뒤 부부는 분만비, 성년까지의 양육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의 교육비, 위자료를 합해 2억 원 넘게 구했습니다. 1심이 그 일부를 인용했지만, 부부와 병원 법인 모두 불복했습니다.

법원이 본 것

불임수술 약속과 그 불이행 이유 1 가

법원이 보기에, 부부의 불임수술 청약을 병원이 이의 없이 받아들인 때 불임수술에 관한 의료계약이 성립했습니다. 그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생긴 손해는 병원 법인이 배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원은 응급수술이었으니 산모가 전공의에게 불임수술을 챙기라고 일러 두거나 수술 뒤 확인했어야 한다며 과실상계를 주장했습니다. 과실상계란 피해자 쪽 잘못만큼 배상액을 줄이는 것입니다.

법원은 응급수술이었다는 증거가 없고, 응급이었더라도 분만 전후 극도의 흥분 상태에 있던 산모에게 그런 확인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과실상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분만비와 위자료 이유 2 가 · 나

먼저 셋째의 분만비는 계약 불이행으로 생긴 통상의 손해로 인정됩니다. 법원은 그 액수가 앞서 둘째를 낳을 때 낸 본인부담금 610,824원과 같으리라고 추인했습니다.

또 법원은 뜻에 반한 임신과 출산으로 산모가 겪은 고통, 가족계획이 어긋난 배우자의 고통은 경험칙상 넉넉히 인정된다고 보아 부부에게 각 1,000만 원의 위자료를 정했습니다.

양육비와 교육비는 손해가 아니다 판시사항 · 판결요지 · 이유 2 다

병원은 임신을 알았을 때 인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었는데도 낳았으니 양육비 청구는 신의칙에 반한다고 맞섰지만, 법원은 당시 모자보건법이 정한 예외 사유에 부부가 해당하지 않음이 분명하다며 이를 배척했습니다.

법원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라도 그 생명권은 부모의 재산상 이익보다 앞서 보호돼야 하고, 부모의 부양의무는 면하거나 남에게 넘길 수 없다며 양육비 · 교육비는 배상할 손해에서 빠진다고 판단했습니다.

판결이 그 근거로 든 것은 헌법 제10조의 인간 존엄과 생명권 존중, 친권자의 보호 · 교양 의무를 정한 민법 제913조입니다.

그 결과 병원이 부부에게 각 10,305,412원(위자료에 분만비 절반을 더한 금액)을 지급하라는 데까지만 인용됐습니다. 1심이 이를 넘겨 명한 부분은 취소됐고, 부부의 항소는 기각된 것입니다.

판단하지 않은 것

  • 양육비 · 교육비가 손해가 아니라고 본 이상, 그 액수 계산으로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 수술이 응급이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하면서도, 응급이었더라도 산모에게 확인 의무가 없다고 보아 결론을 그 물음에 걸지 않았습니다.

실무에서 읽는 법

이처럼 판결은 불임수술 약속의 불이행이라는 책임과, 그 뒤 태어난 생명을 손해로 셈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따로 떼어 봅니다.

의료인이라면

이 판결은 수술승낙서와 함께 낸 불임수술 청약을 병원이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면 의료계약이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

판결은 청약받은 불임수술을 하지 않고 그 사실도 알리지 않은 점을 계약 불이행으로 보았고, 주치의 대신 전공의가 수술한 경위는 산모 과실을 따지는 대목에서만 다뤘습니다.

환자와 가족이라면

이 판결은 뜻에 반한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위자료로, 분만비를 통상의 재산상 손해로 인정했습니다.

판결은 원치 않은 출생이라도 태어난 아이의 양육비 · 교육비는 부모의 손해로 셈하지 않는다는 선을 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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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고등법원 1996. 10. 17. 선고 96나10449 판결,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 이 해설은 판결 원문을 쉬운 말로 옮긴 것이며, 개별 사건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